권력 욕구에서 자유롭지 않을 때,
갑이든 을이든
자기는 평생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다거나, 자기는 평생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산 적이 없다는 사람들처럼 저 역시 제가 차인 것은 기억에서 편집했습니다. ‘그건 사귄 게 아니라 그냥 썸 타다 연락이 끊긴 거지’ 이런 식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는 연애라고 할 수 없다고 빼 버렸습니다. 그리고 차일 것 같으면 선수 쳐서 찼습니다. 이럴 거면 헤어지자고요.
헤어지자고 하니 그 뒤로 연락 한 통도 없던 남자도 있었고, 붙잡는 남자도 있었습니다. 연락 한 통도 없으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남자도 자존심이 단단히 상했던 것 같습니다. 별것 아닌 일로 사귀던 여자에게 헤어지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자기가 별것 아닌 남자 취급 받았다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 역시 ‘헤어지자고 했다고 정말 연락 한 통도 안 하냐? 내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냐?’라며 단단히 삐쳤습니다.
술 먹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대신 연락은 해달라고. 제대로 들어갔는지 아닌지 몰라서 난 잠도 못자고 기다리잖아. 그 정도 배려는 해 줄 수 있는 거잖아”라고 하다가, 상대방이 세 번 정도 더 연락이 두절되면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이럴 거면 헤어지자고요. 그러면 정말로 헤어졌느냐고요? 아니었습니다. 헤어지자고 했더니 말없이 전화 뚝 끊고 연락이 없던 남자를 제외하고는 다시 만났습니다. 붙잡으면 못 이기는 척 다시 만나며 다음엔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헤어질 생각이 아니라 ‘네가 내 말을 안 들으면 언제든 내가 떠날 수 있으니 잘해라’라는 협박 수단이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남을 통제하는 것은 참 짜릿한 일입니다.
내 말 한 마디에 다른 사람을 멋대로 할 수 있다니. 갑질을 하는 심리도 비슷할 것입니다.
특히 한국은 권력에 대해 고개를 숙이는 의전 문화가 엄청납니다.
높은 사람이 오면 미리 문을 잡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고, 그 사람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옆에서 모든 것을 그 사람 먼저 줍니다. 권력 남용에 대해서도 꽤 관대한 편입니다.
누나가 아들 보고 싶다고 우니까, 쓰리스타인 동생이 헬기를 띄워 조카를 집에 보내주었다는 이야기에 ‘아니, 그 헬기가 자기 것도 아니고 누구 맘대로?’라는 반응보다는 멋있다는 반응이 압도적입니다.
권력 남용조차 우러러봐 주는 풍토는 연애에도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초반에 잡아야 된다’, ‘기선 제압이 관건이다’라며 결혼하고 초반 6개월~1년 이내에 상대를 눌러야 나머지 결혼 기간이 편하다고 합니다.
상대를 통제하면서 권력을 누리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뿐일까요.
연애에도 권력은 작동합니다.
평등한 사이라는 허울 뒤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쉬이 조종하고 통제하는 관계는 흔합니다.
여자친구의 전화 한 통이면 피곤에 지친 몸으로도 차 끌고 데리러 와야 한다거나, 여자친구가 지금 뭘 먹고 싶다고 하면 내키지 않아도 따라 나서야 되는 절대 권력의 여자친구를 모시고 있는 남자가 있습니다.
반면 남자친구 말 한마디면 사회생활 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여자도 있습니다.
남자친구가 외박은 안 된다며 학교 총 MT를 못 가게 해서 교수님들도 참석하시는 총 MT에 불참하기도 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러한 영향력을 가지고자 하는 권력 욕구 때문입니다.
권력(power)은 자원을 분배할 수 있는 능력인데,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해도 내 뜻대로 나눌 수 있는 힘입니다.
자신은 차가 없지만 언제든 남자친구를 불러 운전을 시킬 수 있다면 남자친구(운전사)와 남자친구의 차를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권력의 짜릿한 맛 때문에 이별을 협박 수단으로 삼아서라도 서로를 통제하려고 들 만큼 독성이 있다는 문제뿐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상대를 움직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려를 배려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입니다.
이런 관계는 분명 건강한 관계가 아닙니다.
연애할 기운은 없는데 사랑하고 싶어요 - 최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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