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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퇴사했습니다

by 성공한 사막여우 2022. 2. 13.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사람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알아보고 싶었다. 직장 생활을 오래할수록 드는 생각은 ‘나는 사람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대를 이해할 수 없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서로 소통을 하고자 노력할수록 더욱 소통에서 멀어지는 이상한 기분. 그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보다 더 기이한 경험이었다.  서점에 가보니 베스트셀러 중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었다. 벽돌 같은 두께였지만 궁금증을 해소해 줄 소중한 정보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그 두께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서문에 보니 그가 책을 쓴 이유도 내가 책을 든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어디든 못된 인간이 있고, 그것은 모든 게 이상적으로 돌아갈 것만 같은 선진국이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나 보다. 로버트 그린은 서문에서부터 나의 상처 난 마음을 토닥거려줬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는 일부러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고, 내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 불쾌감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는 내 상사나 리더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친구일 수도 있다.”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위즈덤하우스, 2018, 5쪽.    

 

이런 험한 꼴을 당하는 게 나만이 아니라는 것은 큰 안도감을 주었다. 몇 세기를 걸쳐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은 쇼펜하우어조차 이렇게 말했다.    

 

“뜻밖에 야비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짜증 내지 마라. 인간의 성격을 공부해 가던 중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새로 하나 나타난 것뿐이다. 우연히 아주 특이한 광물 표본을 손에 넣은 광물학자와 같은 태도를 취하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위즈덤하우스, 2018, 5쪽.

 

 

비난과 모욕 앞에서 분개하는 당신은 ‘자아도취자’다  우리는 결코 자신을 ‘자아도취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아도취는 유아인이 영화 <베테랑>에서 연기하던 재벌 3세에게나 어울릴 법한 오만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반면 나는 합리적이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며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도, 부당하게 남을 해치지도 않는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남을 짓밟지도 않기에 그런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존중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선한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무지한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분명 강약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세상의 무례함에 분노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분명 나의 모습이었다. 아니, 이건 뭐지, 내가 자아도취자?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를 비판할 권리가 있듯이 그 누군가도 나를 비판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내가 왕도 아니고 재벌 3세도 아닌데 모두가 나를 칭송하기만을 바란다면 이상한 발상이 아닌가? 아니, 요즘은 영국의 여왕도, 재벌 2세도, 대통령도 신랄하게 비판을 받고 심지어 조롱을 당하기도 한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비판에 관대하고 독재국가에 가까울수록 지도자에 대한 비난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비난을 금지한 것에 대한 대가가 어떠한지는 모두 잘 알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사랑해 주고 존중해 준다면 그 상황이야말로 매우 비현실적이며 굉장히 모순될 것이다. 심지어 온 세상이 그의 편일 것 같은 버락 오바마에게도 공개적으로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는 트럼프가 있다. 그런데 인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위인도 아니고, 오류투성이인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한두 명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누군가 자신을 비난할 때 화가 나는 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나를 공격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에 분노하며 이런 세상이 잘못됐다며 세상을 원망하는 자세는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바랐던 대로 세상 사람 모두 서로를 칭찬만 한다면 세상에는 어떤 갈등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갈등과 극복을 중심축으로 감동을 주는 이 세상 모든 드라마와 소설 속의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뼈아팠지만 그토록 비난을 못 견뎠던 것은, 나의 가치를 전적으로 상대의 평가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저자가 말한 대로 자존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나를 원망하더라도, 어떤 모진 소리를 듣더라도 나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었으리라. 세상이 전부 그를 욕하고 등졌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해서 재기에 성공했던 한 가수는 그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무조건적인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기에 최악의 순간에도 자신을 보호하고 다독여줄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인간 본성의 해부는 나 자신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의 시각이 결코 어른스럽지 않다는 것을 처절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안경을 써야 했다. 나의 부족한 점을 알고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성숙한 어른으로서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 맺기를 바란다면 나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시각을 키우는 것이 내게 남겨진 숙제였다.

 

 

뒷담화는 후회를 불러온다  하지만 경험상 어떤 피치 못할 상황이었을지라도 남을 욕하는 건 후회를 불러일으킨다. 보통 누군가를 뒷담화를 할 때는 한두 가지 사건으로 그 사람 자체를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앞에 놓고 하는 경우보다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제3자와 함께 비난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런데 한번 그렇게 제3자 앞에서 A라는 사람을 욕하게 되면 남을 의식해서라도 A와는 좋은 관계를 맺기가 껄끄럽다. 설령 앞뒤 무시하고 다시 호형호제하고 지낼지라도 나와 함께 뒷담화를 했던 제3자로부터 앞뒤가 다른 위선자라는 평판을 받을 것은 각오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때는 부정적인 면이 압도적으로 보였지만 또 지내다 보면 긍정적인 면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인데, 함께 동조해 뒷담화를 하고 나면, 오히려 그의 좋은 면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누군가를 마음 깊이 비난하면 어두운 기운이 가득 찬다. 내 마음을 오물로 가득 채우고 싶지 않으면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매일 반복되면 나의 삶은 오물로 가득한 것이 되어버린다. 한 사람 때문에 내 삶을 냄새나는 시궁창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하지 않았나. 중이 절을 떠날 생각이 없다면 적어도 자기 마음만은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은 술주정뱅이에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기분을 최대한 맞춰주는 훈련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어느 누구도 5분 만에 매료시키는 세계 최고의 매력남이 됐다고 한다. 어떤 리더에게도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절을 떠나기 전에 혹시나 내가 놓치고 있는 성장의 기회가 있지는 않을까 한 번쯤 되돌아보자.

 

파워게임에 프로로 참가하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녀는 남자들의 플레이를 잘 알았다. 한마디로 파워게임에 참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감정적이지 않았다. 항상 심리적으로 적절한 거리를 뒀기 때문에 친절했지만 때로는 쓴소리도 할 수 있었고, 누군가 비난을 하더라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태도는 상대방에게 안정감을 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그녀는 너무 진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허점을 보이지도 않았으며, 대신 ‘겨뤄줄 만한’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적절한 공격과 방어로 어떤 상대와도 멋지게 플레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내가 본 그녀의 성공 요인이었다.  반면에 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자 했다. 그 때문에 누군가에게 쓴소리를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고, 누군가가 나를 공격할 때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다. 로버트 그린은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그 어떤 것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플레이하면 되고, 그것은 대부분 ‘나여서’가 아니라 ‘나의 자리와 위치’로 인해 받게 되는 피드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임에 감정을 싣는 건 아마추어라고 그는 말한다. 남자들은 사회에서 권력 싸움을 한다고 하지 않나.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사무실에 있는 남자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고 서열대로 일렬로 서보라고 하면 본인이 누구 뒤에 서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저런 야비한 종족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누가 누군가의 위에 선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굴욕적이고 비열한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들의 세계에서 일하려면 생각의 무게를 좀 가볍게 할 필요도 있겠다. 『오만하게 제압하라』 『권력의 법칙』의 저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권력 싸움은 게임과 같은 것”이다. 최선을 다해 임하지만, 승부에는 깔끔하게 승복하는 것이 게임이다. 게임에 감정을 개입시키는 것은 프로답지 못하다.  아직도 많은 여성이 이런 남성들의 소통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회사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항상 마음을 다해 일을 하기 때문에 자주 상처를 받으며 공격에 발끈하게 된다. 그런데 남자들의 눈에는 이렇게 마음을 주며 성심성의껏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 미덥지 못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들의 기준에서 이것은 게임이고 게임에 감정을 담아서 상처받고 우는 모습은 가엽고 불쌍한 게 아니라 우습게 여기기 딱 좋을 뿐이다. 물론 이런 남성 중심의 게임의 룰이 맞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는 있다. 여성의 참여가 더 많아지면서 이런 게임의 룰도 조금씩 바뀌리라 생각된다. 

 

책 -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퇴사했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