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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댁이 불편한 이유

by 성공한 사막여우 2022. 2. 27.

 

“별 일 하지 않았어도,  별 뜻 없이 한 말이라도 불편할 수 있거든요.”     

 

두 분은 양가 부모님 댁에 얼마나 자주 가시나요?  은지 저희는 되도록 명절, 생신 같은 일이 있을 때만 가고 있어요. 사실 이것도 결혼 전에 얘기했던 부분인데요, 신랑 직장이 시댁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신혼집도 근처로 마련하다 보니 은연중에 시댁에 자주 가야 될 것 같은 분위기였던 거죠. 근데 둘 다 일을 하고, 우리 둘이서 온전히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주말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너무 의무적으로 부모님을 찾아 뵙기보다는 생일 같은 행사가 있을 때 공식적으로 만나 뵙자고 합의를 해서 그렇게 하고 있어요.     가끔이라도 시댁에 가면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죠?  재룡 아무래도 오랜만에 가면 저희 부모님이 말을 무척 많이 하세요. 저보다는 주로 아내를 통해서 하시는 거죠. 솔직히 저는 귀찮으니까 그냥 소파에 앉아 쉬면서 모른 척할 때가 많았어요. 가끔 아내가 ‘자기가 대답 좀 해~’ 그러긴 했는데, 아내가 잘하고 있으니까 솔직히 문제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근데 아내에게도 그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저도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은지 저는 저희 친정에 같이 갔을 때 혹시라도 남편이 불편해할 수 있는 질문 같은 게 나오면 대답을 제가 ‘스틸’하는 편이거든요.(웃음) 남편이 불편함이 없도록요. 남편도 저와 시부모님의 사이에서 그런 역할을 해줬음 좋겠죠. 제가 말하기 불편한 것을 대신 잘 어필해준다든가, 중재하는 역할이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처가댁에 갔을 때는 어떤가요?  

 

재룡 사실 처가댁에서 저도 편하지는 않아요. 잘해주셔도 아직 어색한 게 있죠. 밥을 먹고 접시라도 치우려고 하면 아버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그냥 가서 티비나 보라고 하시니까.(웃음) 분위기가 다르긴 한 것 같아요.  

 

은지 저희 엄마 아빠는 나서서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하시죠. 그니까 신랑은 저희 집에서 완전 백년손님 대우를 받고 있는 거고, 저희 시부모님이 되게 잘해주시지만, 저는 어쩔 수 없는 며느리인 거고. 그 미묘한 차이가 있죠.     

 

 

 

 

 

부모님과 대화가 많이 오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잖아요. 두 분은 그런 경험한 적 있었나요?

 

은지 물론 좋은 시부모님이시지만, 어른들의 ‘별 뜻 없이 하신 말’이 확 꽂힐 때가 있잖아요. 어른들은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에 무심결에 하는 말이지만, 저희가 듣기에는 성 역할을 규정한다든가, 차별적인 발상이 묻어있는 말이 오갈 때가 생각보다 많아요. 악의가 없더라도 말이죠. 언젠가 명절이었는데 친척 어른들과 술자리가 끝나서 정리하던 중에 남편이 먼저 일어나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갔어요. 그걸 보신 아버님이 농담처럼 “쟤가 지금 설거지를 다 하러 가네, 귀하게 키운 아들인데.” 그러시는 거예요. 일단 그게 사실도 아니었지만, (남편도 부모님이 바쁘실 때 혼자 식사도 하고 설거지도 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 팩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혼하고 아들이 변했다고 말하고 싶으셨던 거죠. 결과적으로 남편이 안 하면 누가 하라는 말이겠어요. 제가 해야 되잖아요.(웃음) 아버님께 침착하게 웃으면서 한마디 드렸죠. “아버님, 저도 귀한 자식이에요, 저도 설거지 안 해보고 컸어요.”라고. 아버님이 약간 당황하시면서 우리 며느리 천상 여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그러면서 넘어가긴 했죠. 별말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게 바로 아들은 언제까지고 돌봐줘야 하고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이고, 그러니 그 외의 일들은 며느리가 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이 담긴 말인 거예요. 남편은 물론 제게 귀한 사람이지만, 그게 부모님이 귀하게 키우셔서는 아니거든요.

 

 

그런 상황은 사실 생각지 못하게 튀어나올 때가 많은데, 이럴 때 남편 분은 어떻게 대처하는 편인가요?  

 

재룡 솔직히 말하면 그 상황에서는 뭐가 문제인지 바로 깨닫지 못할 때가 상당히 많았죠. 아내가 따로 집에 와서 그때 그랬었다고 얘기해주면 그때서야 그럴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말이나 농담처럼 했던 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고요.  은지 사실 제 남편이 특별히 무심한 게 아니라,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과 불편한 줄 모르는 사람의 사이에 사회적 배경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걸 계속 강요 받아왔던 입장과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던 입장에 대한. 그래서 저는 묵혀 두지 않고 바로 말을 다 하는 편이고요. 그 당시에는 저도 ‘어? 이게 뭐지?’하고 넘어가게 되는 그런 상황도 많거든요. 그런 것도 나중에 남편과는 얘기를 꼭 하는 편이에요. ‘그때 내가 좀 불편했다. 이런 건 아닌 것 같다’라고. 그러면 남편은 저에게 그냥 좀 넘어가자거나 참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는 관계에 대해 귀 기울여주죠. 그래서 이런 대화가 가능한 것 같아요.

 

 

한 번에 터뜨리지 않고 꾸준히 얘기하는 거 좋은 거 같아요. 공감대도 계속 쌓아갈 수 있고. 하지만 정작 어른들에게 할 말을 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어렵잖아요.  

 

은지 저도 처음에는 며느리인데 그러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시댁 가면 잘해야 되고, 부지런도 떨어야 되고, 어머님이 요리 이거 할 줄 아냐고 물어보시면 할 줄 안다고 해야 될 것 같고. 우리가 어릴 때 왜 ‘신부수업’이란 얘길 많이 듣고 자랐었잖아요. 여자는 음식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그래야 시집 잘 간다고. 그런 교육을 잘 받고 성장한 사람처럼 보여야 좋은 아내라는 생각이 저한테도 깔려있었던 것 같아요. 그랬었는데, 점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여자라고 실제로 살림을 따로 배웠던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런 것들이 남편만큼 저에게도 어려운 일이고요. 둘이 동등하게 결혼을 했는데 저에게만 온당치 않은 역할이 부여되는 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른들에게도 할 얘기는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얘기함으로써 그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어쨌든 부모님들도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안 해보고 살아오셨으니까요.

 

보통은 잠깐이니까, 일년에 몇 번 안 되니까 그냥 넘어가자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 말 꺼내는 게 껄끄럽고 불편하니까. 근데 그렇다고 그냥 방치하면 결국은 바뀌지 않겠죠.  은지 제가 시댁 가는 게 1년에 몇 번이나 되겠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특히 불편함을 느끼는 건 명절 정도거든요. 명절은 1년에 딱 두 번인데, 그 두 번 내가 참으면 모두 편안하고, 남편도 가서 그만큼 잘해주면 되고. 저도 알고 있죠. 근데 그렇게 하면 결국 저의 며느리로서의 낮은 지위를 인정해야 되고, 또 그 화살이 남편한테 가서 우리를 싸우게 만들잖아요. 저는 남편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싶거든요.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예요. 물론 큰 갈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것보다는, 싫은 건 싫다고 얘기를 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옳은 쪽으로 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이 불편하고, 싸우게 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