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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예쁜 여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by 성공한 사막여우 2022. 3. 2.

 

주름진 얼굴에 대충 묶은 머리, 미처 정리하지 못한 손톱의 때, 검푸른 치마를 불안한 듯 만지작거리는 뭉툭한 손가락, 그리고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재판정 피고인석에 앉아 변호인과 검사의 침 튀기는 입만 번갈아 바라보는 한 여인이 있었다.이민자 가정의 농부 출신인 그녀는 근래 일어난 남편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다. 빈약한 정황 증거와 어린 아들의 증언에 의존해서 흘러가는 의구심 많은 재판이었지만 그녀 편에 서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그녀가 무죄를 선고받기를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사람들은 사건의 진실보다 용의자의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의 외모에 대한 혐오스러운 표현들이 신문기사 한쪽을 장식했지만 용의자 여성은 상황이 자신에게 얼마나 불리하게 흐르고 있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반면에 같은 시기에 다른 두 명의 여성 살인 용의자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았다. 배심원들은 아름다운 두 명의 여성을 용의자가 아니라 이미 남편을 잃은 것으로 죗값을 다 치렀는데도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될지 모르는 무고한 피해자로 여겼다.언론은 아름답고 스타일리시한 그 여자들의 재판 과정을 흥미롭게 중계하면서 재판정에 나온 그녀들의 패션과 몸가짐 하나하나를 정성스러운 글로 전달하기에 바빴다. 두 여성은 오락가락하는 증언과 확실한 현장 증거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꾸밀 줄 몰랐던 투박한 외모의 농부 역시 남편을 살해했다는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재판의 흐름을 바꿔놓은 건 다름 아닌 용의자의 ‘Make Over’였다.

 

 

 

이 말이 ‘변신’이라는 뜻임을 반증하듯이 당시 유행에 부합하는 새로운 옷과 짙은 갈색으로 염색한 뒤에 세련되게 자른 단발머리,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 같은 것들이 그녀를 구했던 것이다. 언론은 달라진 외모의 그녀를 ‘나비’라고 불렀다. 대중은 그녀를 살인을 저지르고도 남을 만한 낯설고 혐오스러운 이방인이 아니라 친숙하고 상냥한, 어쩌면 결백할 수도 있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타일 외에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말이다.이 사건은 1920년 시카고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3명의 살인사건 용의자 이야기이다. 이민자 가정의 농부 출신 여성의 이름은 사벨라 니티Sabella Nitti로, 뮤지컬 <시카고>에서 끝내 사형을 당하는 발레리나 역할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나머지 두 명의 여성 용의자는 각각 뮤지컬 <시카고>의 주연인 벨마 켈리Velma Kelly와 록시 하트Roxie Hart의 모티브가 된 벨바 게르트너Belva Gaertner와 뷸라 아난Beulah Annan이다.참고로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두 사람을 살해했고, 록시 하트는 애인이 자신을 속인 것에 분노하여 그의 정부를 살해했다.

 

 

뮤지컬 <시카고>의 원작인 연극의 작가이자 당시 아름다운 여성 범죄자를 옹호하는 기사를 썼던 <시카고 트리뷴>지의 모린 댈러스 왓킨스Maurine Dallas Watkins 기자는 이런 내용이 큰 인기를 얻어 뮤지컬로 제작되는 상황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여성의 외모로 재판에서 유무죄가 가려진다는 것은 드러내 놓고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기자들이 노골적으로 여성의 외모를 중심으로 기사를 써나가며 ‘예쁜 여자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암묵적 룰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비판당할 소지가 있었다.  

 

 

껍데기에  영향을 받는 우리들

 

생각해 보자. 이런 사건은 비단 1920년대 시카고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화일 뿐일까? 한 실험 결과를 보자.1다양한 매력을 지닌 사람들 96명의 사진을 실험 참여자들에게 하나씩 보여주며 그들 각각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적혀 있는 범죄 보고서도 함께 제시했다.그리고 대상의 신체적 매력 즉 외모가 어떤지, 내가 판사라면 범죄에 대한 형량은 어떻게 내릴 것인지 판단하게 했다(이때 성격이나 경제적 지위에 대한 정보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설계했으며 범죄의 종류, 성별과 인종에 대한 정보도 같은 비율로 무작위로 제시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외모와 범죄의 형량은 두 변수 사이에 어느 한쪽이 증가할 때 다른 쪽은 감소하는 음의 상관관계*를 이루었다. 신체적으로 매력적일수록 낮은 형량을 받은 것이다. 

 

* 수학에서 두 변수 간 상관계수가 한쪽이 평균보다 크면 한쪽이 평균보다 작을 때 음의 상관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실험 결과가 그렇더라도 실제 상황에서는 다르지 않을까? 아마 다르길 바랄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결과가 사실로 나타나는지 알아보았다. 다양한 범죄 항목으로 기소된 실제 범죄자들의 신체적 매력을 측정하고 재판에서 최종 선고된 형량과의 관계를 예측해 본 것이다.2실제 형량이 선고되기 전에 여러 실험 참여자에게 평가하도록 한 용의자의 신체적 매력은 이전 실험 결과와 마찬가지로 최종 판결 형량과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법정에서조차 껍데기에 간섭을 받는 것이다.사실 이런 ‘외모 편향’은 우리들 가까이에서 언제든지 경험할 수 있다. 판사가 자격이 없었거나 배심원들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인간은 늘 외모 편향을 경험하고, 그에 따르기를 유혹 당한다.

 

 

극악한 범죄 사건이 터지면 생생한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 포털 사이트에서는 외모 품평의 방식으로 재판이 벌어진다. 최근의 성범죄자들을 떠올려 보자. ‘역시나 그런 일을 저지를 만한 외모’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부턴가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베스트 댓글이 늘 기사에 따라 붙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말에 명확히 반증할 케이스를 충분히 알고 있다.누구나 인정할 만한 훌륭한 외모의 스타가 일으킨 문제들, 범죄, 거짓말, 그리고 법에 저촉되지 않는 윤리적 문제들까지……. 그런데도 왜 우리는 범죄자는 범죄자답게 생겼을 것이라 예측하며 여전히 그런 말들을 내뱉는 것일까?

 

 

안전함에 대한 판단, 즉 상대를 신뢰할 것이냐 하는 판단 때문에 외모는 매번 많은 오류를 일으킨다.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라이스대학에서의 실험은 이런 오류를 여실히 보여준다. 

 

매력 있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금액을 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안전한 외모로 해석하기 대문이다. 

 

 

하고 싶으면 일단 하면 된다. 그러나 하는 것이 재미있거나 신나지 않고 힘들면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꾸밈 욕구와 동기에 그저 충실하면 된다. 남자든 여자든 간에 꾸미고 싶은 욕구를 일부러 눌러 담을 필요는 없다. 

 

매력에 외모가 관여하는 바는 여전히 크며, 잘 정리된 외관은 후광 효과를 가져온다. 그 이득을 일부러, 강제로, 타의에 의해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강박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꾸밈 노동을 하는 일은 없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