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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을의 사랑 "누구를 사랑하고자 한다면,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해"

by 성공한 사막여우 2022. 3. 3.

 

을의 엉터리 셈법 

 

“누구를 사랑하고자 한다면, 너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해.”- 애니메이션 <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 중에서 

 

계약서에 흔히 쓰이는 ‘갑’과 ‘을’은 본래 나란한 말이지만,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는 심하게 기울어진 관계를 나타내는 관용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주고받음에 있어 누가 더 유리한 입장에 있는가를 따지는 ‘갑’과 ‘을’은 사랑 이야기와는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연애관계에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J는 얼마 전에 1년 정도 만나던 사람과 헤어졌습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언제나 연애 중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그의 지인들은 그가 이별로 너무 힘들어해 위로를 해주면서도 내심으로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금방 새로운 사랑으로 들뜨고 활기찬 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오히려 걱정인 건 연애 중일 때였습니다. 그는 늘 상대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것들로 인해 힘들어했습니다. 언제나 을의 입장이 되어 허우적대는 그를 보면, 즉시 이번에도 또 힘든 상대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대학원에 다닐 때는 동기였던 상대의 연구를 돕느라 자기 졸업 논문은 한 학기 미뤄야 했고, 직장인이 되어서 만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대신해서 모든 데이트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온갖 투정과 짜증을 들어주고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그는 분명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늘 매력을 잃을까 걱정했고 혹시라도 이별 통보를 받을까 조바심을 내곤 했습니다. 이번에 헤어지고 나서 그는 ‘그냥 옆에만 있어주기를 바라는데, 도대체 왜 자신은 그것도 가지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을의 사랑에는 ‘덤’이 있습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거나, 다른 것을 끼워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을 도와주거나, 투정과 짜증을 감내해주거나, 다른 관계를 포기하거나 하는 등 상대의 다양한 요구에 응해줍니다.반대로 그가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점점 하나씩 줄어들었습니다. 돈을 벌지 않아도, 그를 존중하지 않아도, 신뢰를 지키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몰라줘도 괜찮고, 이젠 ‘그냥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셈이 참 엉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이런 계산이 가능한 것은, 우선 자신에게 어떤 결핍이 있다는 생각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늘 외부에서 주어진 기준을 두고 우리 자신을 부족한 사람으로 느끼는 방식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 기준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조차 모르기도 합니다.자신이 괜찮지 않거나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는 사랑받기 위해 엉뚱한 애를 쓰거나 괜찮다는 것을 상대방을 통해 계속 확인받고 싶어지고, 만약 사랑한다고 해도 그 말을 진심으로 믿기가 어렵습니다.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그 방식 그대로 우리를 부족한 사람으로 느끼게 하고, 더 완벽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면, 혹은 자신의 부족을 채워 완성시켜주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이 사랑일까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상대가 자신에게 주는 것이 엄청 가치 있다고 여길 때에도 이런 계산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이야말로 주관적인데, 그만큼 내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일수록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기울기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 

 

J는 외동인 데다 혼자 타지에서 버텨온 시간이 길어 늘 외로움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상태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심경은 각기 다릅니다.외로움은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연결의 느낌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인데, J는 다만 그것을 한 사람과의 중요한 연결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그러나 대개 그런 절실한 문제들은 타인에게 의존할수록 불안정합니다. 스스로가 해결의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을은 이 관계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쪽입니다.

 

 

을은 관계를 잃는 것이 훨씬 고통스러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는 가끔 아동이나 청소년을 상담할 때, 을의 입장이 되어보곤 합니다. 자발적으로 자기 필요를 느껴 상담에 찾아오는 친구들은 드물고, 대개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와서 나를 만납니다.아이들은 이 치료적 관계의 주도권이 자신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모든 제안을 귀찮고 짜증스럽게 여기며, 걸핏하면 그만둘 거라는 협박을 합니다. 이 관계의 의미와 목적이 순전히 아이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는 것은 앞으로의 치료 과정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칫 그로 인해 상담이 멈출까 봐 두려워하면, 내담자에게 끌려가다가 도움도 되지 못하고 결국 종결되고 맙니다.상담이든 공부든 사랑이든 스스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 수가 없는 일입니다. 모든 의미를 혼자서 붙들고 있으면 상대의 횡포를 눈감아야 할 뿐 아니라 결국 사랑은 종결됩니다. 기울어진 바닥에서 시작하는 을의 사랑에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을 쪽으로 굴러오기 마련입니다. 갈등이 생기면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는지, 혹시 오해한 것은 없는지 곱씹으며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그래서 더 자꾸 자신을 탓하게 되고, 그것이 더 깊은 상처를 만들어 냅니다. 누군가를 더 좋아해서, 이 관계가 더 소중하고 중요해서 나의 욕구보다 그 사람의 욕구를 우선하게 된다고 해도 이후에 사랑받지 못한 자신에 대한 연민이 가득 올라온다면 다시 기울기를 살펴 조정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일에는 갑과 을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갑이 최소한의 인간미를 갖추고, 을을 함께 협력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존중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지 않을 때 을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지난한 싸움을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나 사랑하는 일에서는 우선 을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을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은 상대가 바로 해줄 수가 없습니다.그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은 을의 몫입니다. 그런 후에도 만약 기울기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상대가 그런 상황을 암암리에 원하고 있으며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때는 당연히 을은 그 사랑을 종결지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