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가 늘고 있다’는 말은 이제 진부해진 듯하다.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마시는 술), 혼방(혼자 가는 노래방) 등의 신조어도 낯설지 않다.
2016년에도 혼자 잘 살고 싶은 독자들이 1월 29일, 홍대 레드빅스페이스에 모였다.
2014년 12월 『혼자의 발견』을 낸 곽정은 작가와 2015년 9월 『개인주의자 선언』을 쓴 문유석 판사가 나누는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북토크는 두 작가가 서로에게 5가지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5문 5답’시간과 독자들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곽정은이 문유석에게 묻다 먼저 『개인주의자 선언』을 3번이나 읽었다고 밝힌 곽정은이 문유석에게 물었다.
곽정은: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 행사의 신청 댓글 중에 ‘현업 판사이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이 괜찮은가’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의 성향을 밝히시는 것에 대해 두려움은 없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문유석: 두려웠죠. 두려웠지만 그런 반응도 존중합니다.
개인주의자로서 그분이 저를 싫어할 자유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곽정은: 존중한다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이 책에서 제가 가장 끌렸던 문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57쪽에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라는 말이 확 와 닿았습니다.
하지만 상사나 부모님 등 권력관계의 위에 있는 타인에게 ‘싫다’라고 말하는 것은 큰 용기와 스킬을 필요로 하는데 어떻게 ‘싫다’고 말해야 좋을까요?
문유석: 저도 그 어려움을 공감합니다.
그래서 똥개라는 강한 표현을 쓴 것이기도 해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킬은 2가지인 것 같아요.
저는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보다 나한테 손해가 적으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계산했어요.
상대에 따라, 상대에 맞춰서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저 혼자 한다는 건 한계가 있어요.
즉흥적인 생존 전략보다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쓴 이유도 그것입니다.
“요즘은 그렇게 안 한대요.” 등의 말로 분위기를 바꿔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쓴 것입니다.
곽정은: 그렇다면 세 번째 질문입니다.
저는 개인주의와 결혼은 양립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판사님은 결혼하신 분으로서 어떻게 건강한 개인주의를 실천하고 계십니까?
문유석: 개인주의와 결혼을 양립하는 것은 정말 어렵죠.
결혼은 가장 어려운 관계인 것 같아요.
저는 그걸 깨우친 후로는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저는 혼자 노는 걸 좋아하지만 아내는 많은 걸 함께 하길 원했어요.
그래서 함께하고 싶어하는 척이라도, 한번 물어보기라도 해보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직도 노력 중입니다.
곽정은: 계속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웃음)
네 번째로 저는 요즘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개인주의는 더더욱 실천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남녀가 함께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와 개인주의와의 관련에 대해서 여성들에게 ‘이런 개인주의자는 어떨까요?’ 하고 제안해주신다면요?
문유석: 솔직히 말하면 배우고 싶어요.
제 나름대로 사회 여러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하지만 제 눈에 보이는 것에만 그런 거에요.
여성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도, 지식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곽정은 : 마지막으로 개인주의자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판사님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문유석: 저한테는 삶의 목적이에요.
우연히 태어난 것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끊임없이 소소한 행복을 최대화하고 싶어요.
5문 5답-문유석이 곽정은에게 묻다 다음으로 문유석이 곽정은에게 물었다.
문유석: 『혼자의 발견』은 연애와 성에 관한 이야기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의 성에 대한 인식은 어떤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곽정은: 예전에는 체위에 대한 고민이 흔했지만 제가 다른 책을 준비하면서 사연을 받은 것과 비교하자면 고민의 영역, 난이도 등은 변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내 몸의 행복은 나의 것인가 그의 것인가’, ‘그 사람이 원할 때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가?’ 등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는 여전히 폐쇄적인 시각들, 눈치 보는 입장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런 두려움의 원인을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고민의 영역을 달라졌지만 폐쇄성의 정도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문유석: 폐쇄성이 유지되는 이유가 뭘까요?
곽정은: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여성 임원의 비율이 높아지고, 여성의 취업률이 올라가는 등의 지표는 예전과 달라졌을지 몰라도, 여성의 전반적인 지위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는 것과 다름 없다고 느낍니다.
여성의 가치가 단순히 외모나 젊음, 성적으로 폐쇄적인 것에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죠.
성에 대한 고민이 그 내용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관계에 대한 여성의 고민은 여전히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하는 차원의 것들이 많은 것은 바로 그 이유입니다.
문유석: 그런 문화를 바꾸기 위한 변화의 실마리는 무엇일까요?
곽정은: 판사님이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 안에서 자기의 생각을 비추어 볼 필요는 있을지라도, 남들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재단하고 옭아매서는 안되는 거죠.
다양한 맥락안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개인주의를 실천해야 해요.
제가 <마녀사냥>에 출연한 것도,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문유석: 저는 상대방의 무지를 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교육, 계몽도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다른 영역에 비해 젠더 이슈나 성 문제에 대해서 뒤처져있다면 여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계몽, 교육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곽 작가님이 그런 역할을 해주실 의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곽정은: 계몽이라뇨, 당치 않습니다.
누군가를 계몽할만한 인재는 못되고요.
다만 저는 제가 생각하는 바를 또렷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저런 책을 많이 쓰고 싶지만 그것의 목적이나 지향점이 계몽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문유석: 지금 저는 계몽이 된 것 같습니다(웃음).
『혼자의 발견』을 읽으면서 제 책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저는 추상적이고, 곽정은 작가님은 구체적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여성으로서 행복한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부딪쳤던 벽 중 가장 힘들었던 것 두 가지 정도 이야기해주세요.
곽정은: 2009년 결혼생활을 정리했을 때, 뭐랄까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죠.
모두들 결혼제도 안에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 튕겨져 나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누구의 결정도 아닌 저 스스로를 위한 100%의 결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13년동안 <코스모폴리탄>에서 여성과 성에 대해 글을 쓰면서, 1년 8개월동안 <마녀사냥>에서 관계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하면서 받았던 크고 작은 편견어린 시선 역시 제가 감당해야 했던 벽이었죠.
하지만 오랫동안 취재했던 분야에 대한 제 자부심과, 이것이 결국 인간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부분 때문에 꿋꿋하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묻다
Q. 저는 올해 24살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청년으로서, 여자로서 자존감을 잃지 않고 잘 버티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문유석: 함부로 위로할 수 없는 문제네요.
하지만 잘 버티고 잘 사실 거라고 생각해요.
기대를 버리면 낙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엉망일지라도 길게 보면 발전할 수 있어요.
분명 어제보다 내일이 나을 것입니다.
곽정은: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를 보기보다는 오늘 하루의 행복에 집중하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
실현 가능한 목표부터 세워보면 조금 더 나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간을 돌려 20대로 간다면 평생 갖고 갈 수 있는 기술을 꼭 하나는 배울 것 같아요.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기술이 있다면 선택의 폭은 조금 더 넓어질 것 같습니다.
Q. 매사에 걱정이 많은 것이 고민입니다.
어떤 일을 선택할 때 복잡하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닦달하기도 합니다.
좀 단순하게 살 방법이 없을까요?
곽정은: 걱정이 많은 건 완벽주의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뭘 골라도 완벽하지 않더라고요.
티가 있더라고 인정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내려놓고 무시하기도 하는 연습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문유석: 저는 큰 조직 내에서 일하면서 취사선택을 해요.
선택에서 모든 경우를 고려하는 건 슈퍼컴퓨터만이 가능하다고 봐요.
우리가 그러려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게 되죠. 그러니까 100점이 아니라, 합격선이 60점이라면 61점을 적시에 만드는 게 좋은 답이에요.
많은 독립변수 중에서 우선순위를 1,2,3을 내보는 거죠.
3가지를 맞추거나 그게 안 되면 1가지라도 맞춰보세요.
무엇을 버릴 것인가, 비용대비 효율성을 어떤가를 고민하시길 바랍니다.
Q. 다른 사람의 시선, 평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문유석: 불가능하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방법과 정도의 문제라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끈을 누가 쥐고 있느냐인거죠.
끌려다니지 않고 최대한 노력해서 끈을 놓지 않으면 100은 안되더라도 60 정도는 자유의 공간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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